박정희 정부

I. 군사정변
장면정부가 신·구파의 대립과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여 정국이 불안정하자, 이를 대한민국의 위기라 외치며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가 육군사관학교 5·8기생 출신 군인들, 그리고 해병대 등과 함께 5·16군사정변을 일으켰어.<★>
장교 250여 명, 사병 3500여 명으로 무력을 앞세워 육군본부·방송국 등 서울의 주요기관들을 점령하여 장면 정부를 뒤엎어버리고 계엄령을 선포해.

그리고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정권을 장악하면서 6개의 혁명공약(반공국시, 민정이양, 유엔헌장 준수 및 자유 우방국과 관계 공고히 함, 청신한 기풍 진작, 경제재건, 실력배양)을 발표하지.
군정세력은 장면과 윤보선에게 계엄선포 승인을 얻어내어 정통성을 확보한 후에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명칭을 바꾸고 군사 내각을 세운단다.

그 다음 날은 미국의 지지까지 얻어내어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기관으로 자리 잡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만들고, 무소불위의 핵심 권력기구인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인물들을 조지면서 권력기반을 강화해 나가.

● 박정희. 5·16군사정변. 혁명공약(반공국시, 민정이양, 경제재건). 국가재건최고회의.

II. 국가재건최고회의
정치와 경제를 나누어서 보자.
1. 정치
나라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마음을 먹었어.
뭐부터 해야 할까?
당연히 헌법부터 뜯어 고쳐야지.
국가재건최고회의는 5차 개헌을 해(62).

장면정부는 의원내각제였잖아?
이걸 다시 대통령제(임기 4년)로 복귀시켜.
그리고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지.
이때 이후로 지금까지 쭉~ 대통령제와 단원제가 유지돼.
또한 간선제도 직선제로 다시 바꾼단다.

개헌을 방해 없이 진행하기 위해 기존의 정치인들을 썩어빠진 정치인으로 몰아서 국회와 지방의회, 그리고 정당과 사회단체들을 해산시키고 기성 정치인들이 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영원히 국회를 없애고 정치인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놓을 수는 없겠지?
언젠가는 국회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테고 박정희를 견제할거라고.
따라서 조만간 새로 탄생할 국회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 이승만이 자유당을 창당한 것처럼 박정희도 민주공화당을 창설해.

2. 경제
공산주의 북한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이미 장면정부 때부터 나온 계획안인데 이를 수정·보완하지.
어떤 사업이든 시작을 하려면 자본금이 필요해.
경제개발 역시 자본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돈이 없어 ㅠ

그래서 박정희는 지하에 숨은 돈을 끌어내기 위하여 화폐개혁을 한단다.
지금까지의 돈을 무효로 만들고 새로운 돈을 찍어내는 거야.
하지만 성과는 시원찮았고, 사회에 혼란을 불러 일으켰지.

● 정치 : 대통령제(임기4년).
● 경제 : 경제개발5개년계획.

III. 제 3공화국
1. 자본금 마련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때 국민한테 약속했던 것은 대한민국 위기 사태를 수습하고 민정이양(민간인에게 정권을 넘김)을 하겠다는 것이야.
그래서 박정희는 이 약속을 지키는 동시에 정권을 유지하려고 해.
어떻게...?
자신은 민간인이 되어 대통령으로 출마를 하는 거지.
63년 대선에 '박정희 VS 윤보선' 대결구도가 형성된단다.

여기서 박정희가 승리하고 제 3공화국이 출범을 해.
목표는 경제개발과 반공!
대통령이 됐으니 경제개발을 강하게 추진하려고 하는데....
화폐개혁마저 실패로 돌아가서 여전히 돈이 없어;
돈 벌기 위해 장사 한번 해보려는데 빈털털이면 어떻게 시작을 하겠어;
투자 받아야지 뭐...
그래서 외국에서 돈을 끌어오기로 함.
크게 2가지 사건이 있었지. 한일수교정상화와 베트남파병!

(1) 한일수교(65)<★>
우리가 알고 있는 JP.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김종필이 일본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 떠나.
그리고 결국 돈을 받아내지.
무상(그냥 주는 돈)3억 달러 + 유상(빌려주는 돈)2억 달러...
한일수교로 인해 종잣돈이 마련됐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대일의존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단다.

또한 이 돈을 받는 대신 대한민국 국민들의 개인청구권이 소멸한다는 조건이 있었어.
지금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한테 배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위 조건 때문이야;
게다가 이 돈은 일제강점에 대한 사죄의 의미가 아니라 독립축하금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일본이 비아냥거렸어.
이 때문에 '민족적민주주의의 장례식'이라는 돌직구를 던지며 학생과 지식인들을 주체세력으로 한 민중들이 비판을 해.

안그래도 이런 굴욕적인 수교가 성립되기 1년 전부터 이에 대한 불만은 시위로 번지는데, 이게 바로 1964년의 6·3시위야.
정부는 계엄령을 내려 무자비하게 진압;

(2) 베트남 파병(65)
미국의 요청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개발자금 획득을 명분으로 1965년 베트남에 군사를 파병해.<★★>

미국 : 돈 필요해?
한국 : 응
미국 : 나 베트남에서 전쟁 중이거든? 너도 도와줘. 그럼 돈 줄게.
한국 : 그래 콜.

이렇게 한국은 파병을 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국군장비현대화·보충병력확충·차관제공 등의 내용이 들어간 브라운각서<★>를 받아.
우리나라 청년들을 전쟁터에 보낸 것은 가슴 아프지만 각서를 통해 지원금을 받아서 이제 나라에 돈이 생긴 거야.
이 돈을 기반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한단다.

2. 박정희 VS 윤보선
67년도에 대선이 있었고 이 당시에도 대통령 중임이 2회까지는 허용됐기 때문에 박정희는 다시 출마를 해.
또 다시 '박정희 VS 윤보선'에서 10% 차이로 박정희가 승리!
그 다음 달에는 제 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는데 공화당이 국회의원 재적수 2/3에 웃도는 129석을 확보해.
이건 박정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헌도 할 수 있다는 얘기야.

굴욕적인 외교와 베트남파병에 대한 반발이 심했으면서도 박정희와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단 없는 전진'이라는 박정희의 슬로건 덕분이야.
이왕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했으니 끝까지 밀어달라는 거지.
나중에 경제파트에서 자세히 말해주겠지만, 실제로 경제가 성장하여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었거든.

3. 6차 개헌
1969년...
다시 또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가 반이나 지나가고... 또 출마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겨.
이승만 정부 때 배웠지?
대통령 세 번 못한다고....근데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에 한하여 세 번 이상할 수 있다고 어거지로 개헌했잖아?

근데 박정희는 초대대통령이 아니네? 그럼 다음 대선 때 못나오네?
손가락만 빨고 있을 박정희가 아니지ㅋ
당장 헌법을 고치기 시작해.
6차 개헌이야.
주요내용은 3선 가능!<★>

4. 박정희 VS 김대중
개헌에 성공한 박정희는 71년 대선에 또 출마하였고, '박정희 VS 김대중' 대결구도가 형성돼.
박정희는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위해 딱! 한번만 더 대선에 출마하겠다면서... 국민들에게 자신을 뽑아달라고 해.
지금 이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수장이 바뀌면 흐지부지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하지.
김대중은 이에 맞서 박정희가 또 다시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총통체제가 되어 더 이상 우리 국민은 대통령 투표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민주주의 수호를 간판으로 내건단다.

승자는?
근소한 차이로 박정희가 승리해ㅋ
대통령이 된 그는 이제부터 엄청난 일을 진행하지.
다음 시간에 설명해 줄게.

● 1963년 : 대선. 박정희 VS 윤보선. 박정희 승리. 제 3공화국 출범.
● 1965년(한일수교) : 김종필. 독립축하금. 개인적 청구권 소멸. 6·3시위.
● 1965년(베트남 파병) : 브라운각서.
● 1967년 : 박정희 VS 윤보선. 박정희 승리.
● 1969년 : 6차 개헌. 대통령 3선 가능.
● 1971년 : 박정희 VS 김대중. 박정희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