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

연도별로 정리해줄게.

I. 1948년
1. 제헌헌법
5·10총선으로 제 1대 국회가 탄생해.
국민의 대표자들이 선출됐으니 나라의 형태를 정해야겠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그들은 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한단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제헌헌법이야!

주요내용은 대통령제, 간선제(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가 아니라,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선출하도록 함), 친일파 처단, 농지개혁, 국회의원임기 2년!
이렇게 헌법이 공포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돼.

2. 농지 개혁법
당시 한반도에는 소작농들이 엄청 많았어.
소작농이 많다는 것은 나라의 농지소유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야.
땅 소유권이 소수 지주들에게 몰려있어서 많은 농민들이 몰락했다는 뜻이거든.

1946년에 북한지역에서는 토지개혁을 해.
무상몰수 무상분배...
걍 다 빼앗아버린 다음에 나누어줬다고 생각하면 돼.
다만 5정보(대략 5만제곱미터) 토지를 초과하여 소유한 자의 토지만 몰수한 것이고 그 이하의 토지는 내비뒀어.
이렇게 북한이 토지개혁을 해서 자유농들을 늘리니 남한의 농민들은 당연히 부러워하겠지.
따라서 우리도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토지개혁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어.

우리 남한의 1대 국회의원들은 49년에 농지개혁법을 제정하고, 농지개혁을 한단다.
유상매입 유상분배!
빼앗은게 아니라 3정보를 초과하는 토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들인거야.
근데 남한 정부는 이때 당시에 돈이 없었어.
그래서 현금이 아닌 유가증권(지가증권)을 지급해.

유가증권은 그냥 수표라 생각하면 돼.
근데 우리가 현재 흔히 보는 수표는 당연히 쉽게 현금화 할 수가 있잖아.
걍 10만원짜리 수표를 은행에 들고 가서 10만원의 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100% 바꿔준다고.
하지만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던 이승만 정부시절에는 유가증권의 가치가 불안정해.

10만원짜리 유가증권이 어느 날 갑자기 100원의 가치로 하락할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고...

따라서 정부가 매수한 농지의 지주에게 발급한 유가증권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기에, 게다가 6·25전쟁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하자 지주들은 증권을 헐값에 마구 처분을 한단다.
그리고 이렇게 유상매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라 재빠르게 예측한 지주들은 미리 3정보 초과되는 땅을 다 팔아버려.
말만 유상매입이지, 제대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가 있었단다.

분배는 어떻게 했느냐?
위에서 말한 유상매입한 토지와 신한공사를 주체로 하여 일본놈들이 버리고 간 귀속토지를 장악한 후에 유상분배<★> 작업을 해.
북한처럼 무상분배가 아니기에 걍 나눠준게 아니라 땅이 없는 농민들한테 판거지.
그 토지의 가격은?
토지가격을 1년의 생산량 150%를 분할 상환하는 것으로 정한거야.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네가 매년 100가마를 생산할 수 있는 토지를 받았어.
그럼 150가마가 너의 토지의 150% 생산량이지?
이 150가마를 5년간 분할하여 정부에게 갚는거야.

즉 5년동안 매년 30가마씩 지불하면 완전히 네 땅이 되는거란다.
이렇게 하여 우리 남한도 토지 분배 사업을 완수!
어찌됐든 농지개혁 덕분에 우리 남한에는 소작농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자유농들이 많아졌어.

3. 반민족행위자 처단
일제시대때 일본에 협력하여 조선인들을 못살게 굴었던 반민족행위자 놈들을 싹 다 제거해야겠지?
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국가 관리에 필요한 인재들 중에 친일파가 많은거야.
국민은 친일파를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미군정이 그들을 감싸주어 청산을 못했단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군정이 물러가고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어!

이제 해결하지 못한 친일파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자를 조지는 특공대가 탄생해!<★★>
국회의원 10명으로 구성된 이름하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근데 말이야...
해방되자마자 친일파들을 조졌으면 참 좋았는데.... 미군정 간섭 기간에 이미 친일파들이 국가 기관에 자리를 잡고 힘을 키웠다고 ㅠㅠ

친일파들에게 만만치 않은 파워가 형성이 되었던거지.
따라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자 친일파들과 결탁한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방해하면서 공격해.
대통령이 공격하고 나서는데 국회의원 10명이 어떻게 당해내겠어 ㅠㅠ
결국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좌익세력으로 엮어서 실형을 내려 숙청해버리고 해체시켜.
이를 국회프락치사건(1949)이라고 함.
이렇게 되어 남한에서는 친일파 제거가 실패로 돌아간단다.

● 농지개혁법 : 소작농이 많은 상황. 토지 재배분 시도. 그닥 성과 없음.
● 친일파처단 : 미군정이 친일파를 감싸줌. 반민특위. 국회프락치사건.

II. 1950년
국회의원 임기가 2년이었으니 또 총선을 해야겠지?
따라서 2대 국회가 들어서.
근데 여기서 큰 변화가 있었어.
1대 국회에서는 이승만 패거리가 많이 당선됐잖아?
이번에는 이승만의 세력이 생각보다 많이 탈락해.

농지개혁과 친일파제거도 제대로 처리 못했는데 인기가 유지될 리가 없지.
국회에서 이승만 편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겠어?
간선제라서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데 자기 편이 얼마 없으면 대통령을 더이상 못하는 상황이 되잖아.
따라서 이승만은 꾀를 내기 시작한단다.

● 2대 국회. 이승만세력이 많이 탈락.

III. 1951년
51년 12월에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해.
이승만은 미군정 시절에 자신은 당파를 뛰어 넘는 국민지도자라고 하면서 정당이 필요없다고 했지만, 점점 인기를 잃어가자 자신을 확실히 지지해 줄 정당이 필요했던거지.
한마디로 자유당은 이승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정당이야.
이렇게 자신의 정예부대를 만든 후에 국회에서 엄청난 짓을 한단다.

● 자유당 창당.

IV. 1952년
간선제로는 다음 대선에 승리를 할 수 없을거라 예상한 이승만은 개헌(헌법을 개정함)을 시도해.
개헌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국민이 투표함), 국회의원 양원제를 골격으로 한단다.

하지만!!!
이를 1952년 1월 18일에 국회 표결에 붙이지만 압도적인 차이로 반대표가 찬성표를 누르고 부결(통과되지 못함)이 됨 ㅋㅋ
이승만 분노 폭발 ㅋㅋ
이럴 때를 대비하여 이승만은 미리 자유당을 창당한거야.
이때 당시는 6·25전쟁 중이라 부산이 임시수도였는데 자유당은 경찰 및 헌병, 그리고 깡패들까지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을 협박하고 감금하는 사건을 일으켜.
이것이 바로 부산정치파동이야.

온갖 폭력적인 사태까지 일으킨 이승만은 부산에서 열린 국회에서 결국 꾸역꾸역 1차 개헌에 성공을 해.
이를 발췌개헌<★>(유리한 것만 발췌했다)이라 해.
직선제로 개헌에 성공한 이승만은 직접선거를 거쳐 대통령 재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지.

● 개헌시도 → 부결 → 부산정치파동 → 발췌개헌(대통령직선제) → 개헌성공 → 대통령 재선에서 이승만 승리

V. 1954년
2대 국회의 임기가 다하고 또 다시 총선이 열려.
선거에서는 자유당이 승리를 했단다.
이렇게 3대 국회가 들어서고.... 또 사건이 터져!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을 2번까지만 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이승만은 이미 2번 했으니 다음에는 대통령 못하는거잖아.

하지만 이분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지.
다음에 또 대통령을 하고 싶은 이승만은 2차 개헌을 단행해.
주요 내용은 '초대대통령에 한해 3선 금지 조항을 철폐'야.
개헌을 시도한 것까지는 일이 잘 진행이 됐었는데 아주 웃긴 상황이 발생해ㅋㅋ

개헌이 통과되려면 당시 국회 203석 중에서 2/3인 135.3333표 이상을 얻어야 해.
정상적인 판단으로 이는 136이상 얻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근데 찬성표가 135표가 나옴ㅋㅋ

헐... 이거 어떡해?
부결이지 뭐...
근데 어떤 놈이 "135.333 에서 0.3333은 지워야 한다! 반올림을 해야하지 않겠냐? 그래서 135표만 얻으면 된다!" 이렇게 우기는거야.
이승만 패거리는 결국 이 주장을 밀어붙여서 어거지로 2차개헌이 통과됐단다.
넷 이하는 버리고, 다섯 이상은 열로 한다는 뜻에서 이를 사사오입사건이라고 해.

● 2차개헌(초대대통령 3선 금지조항 철폐). 사사오입사건.

VI. 1956년
자~ 이제 3선금지도 철폐됐으니, 이승만은 당당하게 대선에 출마를 해.
후보자들을 볼까?

이는 실질적으로 '이승만 VS 신익희' 대결구도였어.
이승만 반대파 야당인 민주당은 '못살겠다!갈아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세가 당당했단다.

근데 말이야... 신익희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을 해;
이렇게 되서 이승만 500, 신익희 185, 조봉암 250으로 이승만이 당선.
신익희가 죽었음에도 이승만이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것은 지지도가 많이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하지.

VII. 1958년
이승만은 자신의 지지도가 추락한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껴.
이에 따라 반대파를 제제하기 위해 강력한 반공체제로 전환해.
신국가보안법제정(58)해서 자신의 반대세력에 가혹한 탄압을 가하여 진보당사건과 경향신문을 폐간하는 일을 벌인단다.

진보당사건(58) : 당시 이승만 정권시절에는 북한으로 진격하여 무력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평범한 생각이었는데, 진보당이 평화통일을 주장해. 이승만은 평화통일은 북한과 유사한 내용이고, 진보당이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한다며 해체시키고, 진보당의 수장이자 56년 대선 경쟁자였던 조봉암을 사형 ㅡ.ㅡㅎㄷㄷ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뒤흔드는 정적을 이렇게 제거한거지;

경향신문 폐간(59) : 여적필화사건이라고도 해. 경향신문이 정부가 민주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폭력적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글을 썼을 뿐인데 폭력사태를 선동한다고 폐간함ㅋㅋ

● 반공체제 전환. 신국가보안법. 진보당사건. 경향신문폐간.

VIII. 1960년
대선이 치루어 지는데,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