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I. 탄생배경
1. 서재필의 귀국
당시 상황을 보면...
청일전쟁 이후에 개화파는 친일파와 친러파 그리고 친미파로 나뉘었어.
청나라가 뒤지게 쳐맞고 물러났는데 친청파가 득세할 이유는 없지ㅋ
친러·친미파들은 일본을 견제하고, 조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열강들의 세력균형을 이용하여 부르주아 개혁을 하려고 했단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가 탄생!
바로 독립협회!
누가 이를 설립했느냐?
바로 서!재!필!
서재필 알지? 갑신정변 때 김옥균과 거사를 함께하고 21살 나이에 병조참판(현재 국방부 차관)을 지냈던...
비록 3일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도망갔지만;

암튼 이 대단한 어린 청년이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사 생활을 하다가,
1895년에 자신의 반역죄가 사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에 있던 개화파 동지들의 환영 속에 11년 만에 귀국을 해.



그 청소년이 이제 좀 더 세상을 배우고, 성숙해져서 돌아온 겨.

2. 독립신문
서재필이 귀국해서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바로 신문을 만드는 것이야.
신문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그는 유길준 등 개화파들과 함께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을 창간 한단다!
독립신문을 통하여 정부의 시책을 쉽게 설명해주고, 국내외 소식을 민중들에게 전하며, 자주독립과 자유민권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해.

이렇게 독립신문 창간을 성공적으로 해낸 서재필의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이왕 일을 시작한 거 크게 한번 해봐야지?

3. 독립협회의 탄생
그는 개혁적 성향의 지식인들과 관료들을 중심으로 독립협회를 만들어(1896.7.2).
독립협회는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영은문(청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문. 사대주의에 찌든 상징적인 건축물)과 모화관(청나라 사신 접대하는 곳)을 허물고,
지원금을 받아서 독립관 및 독립공원을 조성하고, 독립문을 세워.<★★>

또한 독립협회의 구성원은 지식인들 뿐 만이 아니라, 독립문 건설의 후원금을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개방적인 회원조건을 내세워 전 국민적인 조직이 되었지.
<영은문>
<영은문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우뚝 선 독립문>


● 서재필. 독립신문(한글판+영문판). 독립협회. 독립문 건설.

II. 활동
독립협회가 토론회와 강연회를 열어서 새로운 지식과 교양으로 민중들을 적극적으로 계몽하는 운동을 해.
이게 엄청난 호응을 받아.
그래서 운동의 규모가 상당히 커져.
이에 따라 아예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집회를 열어서 민중의 의사를 정부에 강력히 영향을 미친단다.
또한 자주독립·자유민권·자강혁신... 이 세 가지 강령을 걸고 아주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
독립협회가 얼마나 영향력이 컸냐면 러시아가 부산 절영도를 석탄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조차(조약에 의해 빌림)하려고 하자 독립협회가 나서서 저지했어.<★★★★>
이때 아관파천도 있고, 조선 내에서 러시아의 힘이 겁나 강했는데, "불곰국 새끼들아 꺼져!" 이러면서 귓싸대기를 후려갈겨버렸다고ㅋㅋㅋ

이렇게 존재감이 부각되자, 정부 관료들까지 합세해.
그래서 이제부터는 만민공동회가 아닌 관민공동회<★>를 열어.
걍 민간단체가 아니라 이제는 국가 차원의 조직이 된 거야.
피지컬이 엄청 좋아진거지.
이 기세를 몰아 헌의 6조를 고종에게 승인하라고 들이민단다.

다 외울 필요 없고, 피고인의 인권 규정이 있는 것을 기억해.
그리고 중추원 보이니?
이게 의회인데, 내용을 읽어보면 입헌군주제랑 다를 바가 없어.
고종은 걍 찌그러져있고,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한대.
황제 입장에서는 심기가 당연히 불편했겠지.

● 만민공동회. 절영도 조차 저지. 관민공동회. 헌의 6조. 중추원.

IV. 강제해산
이렇게 민중의 주장이 담긴 헌의 6조를 독립협회가 고종에게 들이밀자, 이의 일부의 승인을 받아내어 '조칙 5조'를 발표하지.
근데 발표하자마자 고종은 독립협회를 탄압해.
독립협회는 보수파 내각을 퇴진시키고 개혁 내각을 수립하려고 했거든.
보수파가 가만히 있었을까?
보수파와 일본의 모략으로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가 아닌, 황제를 폐위하고 공화국을 세우려한다는 헛소문이 고종의 귀에 들어가.
일본에게 털리는 국가의 군주인 고종이 힘이 없다고 해도 황제는 황제잖아?
어느 정도의 파워는 있다고...
고종은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구속해버려.
그러자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열어서 42일 철야시위를 벌이며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단다.
이런 기세에 놀란 고종은 석방을 시키긴 했는데...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지 않고 헌의 6조를 실시하라고 계속 시위를 하는 거야...
고종은 결국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독립협회에 대응하기 위해 보부상단으로 조직된 황국협회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습격!!!
그에 이어 1898년 12월 25일 독립협회는 강제해산 당했단다;
또한 독립신문도 99년에 폐간되지ㅠ



● 황국협회를 시켜서 강제해산.

2019년 수능기출!

독립문, 절영도, 의회 설립.
독립협회에 대한 설명 찾아보자.

1번 : 어린이날은 천도교 소년회.
2번 : 원산학사랑 관련 없고.
3번 : 만민공동회 개최. 정답!
4번 :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
5번 :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조선어학회.

정답 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