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I. 발생배경
1. 대외관계
갑신정변(1884)을 진압해준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극에 달하자, 조선 조정은 그들을 견제하고자 러시아를 끌어들여 조선과 러시아는 조·러비밀협약을 체결하여 손을 잡아.
이에 대한 소식을 들은 청나라는 분노를 해.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경쟁관계에 있던 영국 역시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

러시아가 조선에 진출을 하면 자신의 식민지에도 러시아의 손길이 뻗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야.
영국은 경고의 의미로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1885)하여 위협을 가해.<​★​>
이에 맞서 유길준의 조선 중립화론이 주장됐으나 묵살됐다는 것을 기억!
이렇게 열강들로 인하여 조선에는 불안한 기운이 맴돌았단다.

또한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후로 일본에서 서양 물품이 마구마구 들어왔어.
일본은 서양물품을 싸게 구입을 해서 조선에 비싸게 수출하는 중계 무역을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
서양물품 중에 가장 문제가 된 게 면제품이야.
면제품들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조선 면화 상인들은 다 망해 ㅠ
면화상인뿐만 아니라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농민이었어.
이때 농민들은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집에 틀어박혀 면을 생산했거든.
가내수공업(집에서 하는 작은 수공업)을 하는 농민들이 부업을 잃게 되는 엄청난 피해를 본거지.

강화도조약으로 인한 폐해는 면화사업이 망했다는 것 뿐 만 아니라 또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
일본 놈들은 면화 팔아서 이익을 본 후, 조선의 쌀을 아주 싼 값에 대량으로 사들였단다.
말이 사들이는 거지 이거 완전 수탈이야 ㅠㅠ
어느 정도였냐면... 논에서 벼가 자라고 있잖아? 그걸 수확하기 전에 미리 일본 놈들이 싼값에 사버림.
농민들은 그당시 민씨 세도정치 탓에 거지수준이라, 굶어 죽지 않으려면 돈을 미리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ㅠ

그리고 가을이 되면 일본 놈들이 수확한 쌀을 싹 다 털어가;
빈 털털이가 된 농민들은 겨울과 봄을 또 넘기려면 고리대를 통해 먹고 살아야 함.
이게 반복되다 보니 농민들은 파산...

반면 지주들은 소작료로 받은 쌀을 대량으로 일본에 수출하여 돈을 벌어.
번 돈으로 땅을 더 사들이고 부를 축적....

반면 땅을 잃은 대다수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더욱 빈곤의 길을...
이러니 조선에서 쌀이 부족해지고 결국에는 쌀값이 폭등을 해.
굶어죽는 백성들이 속출하자 함경도 관찰사를 포함한 지방관들이 방곡령을 내린단다(1889).<★​​>
방곡령이 뭐냐면 곡물 수출을 금지하도록 지방관이 직권으로 내릴 수 있는 명령이야.
하지만 수출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하려면 1개월 전에 일본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약 조항이 있었어.

사실 이를 통보했거든? 근데 일본 놈들이 통보를 못 받았다고 우기는 거야!!
그래서 결국 일본 상인들의 요구에 방곡령을 철회하고 조선은 막대한 거금의 손해배상만 물었지...
이런 상황들 때문에 우리 조선 백성들에게 심한 반외세적인 감정이 고조돼.

2. 대내관계
갑신정변 실패로 급진개화파가 몰락한 후, 온건개화파의 개화정책이 실행돼.
근데 열강에게 탈탈 털리는 이유로 조정에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야.
그래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지막지하게 걷어가지.
외세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조정 또한 백성들을 뜯어가는 거야....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남부지방의 대가뭄과 서북지방의 대홍수 때문에 농민들은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정도가 됐어.

이리하여 1880년대부터는 농민들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서 항쟁을 해.

사람이 살기 힘들어지면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나타는데 말야...
이렇게 농민들 사정이 어려워지자 동학이 번성을 한단다.
조선 후기에 최제우가 창시한 그 동학!

사람이 겁나게 모이니까 동학 교세가 커지고 파워가 생겨.
이 동학은 포접제를 통해 엄청난 조직을 형성하지.

이렇게 커진 조직이 1890년대부터 조정을 상대로 슬슬 활동을 시작해.
우선 교조신원운동<★★​>을 전개!

최제우가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혹세무민을 이유로 처형을 당했는데(1864), 그의 명예를 복권시켜달라고 요청을 한단다.
동학은 혹세무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여 합법성을 인정받아서 탄압받는 교도들을 보호하려는 거지.
1892년에 교조신원운동으로 공주 및 삼례집회를 대규모로 열어 시위를 하자, 교조신원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지만 조정은 전라도와 충청도 감사에게 동학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라는 명을 내려.
비록 목표한 바는 실패했지만 더 이상 탄압을 당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어냈어!
이때까지의 집회는 정치보다는 종교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을 기억해.

여기서 멈출세라... 손병희를 포함한 동학 간부들은 광화문에 몰려가 교조신원을 끝까지 상소해.
하지만 실패... 여기서 빡친 동학 간부들은 왜놈과 서양오랑캐는 물러가라는 벽보를 서울에 조낸 붙이고 다니는 거야 ㅋㅋ
조선 조정 캐당황!!!
이때부터 순수한 종교적 색채가 강했던 지금까지의 동학 운동과는 달리 정치적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한단다.
그리고 이어지는 1893년 보은집회에서 척왜양창의를 주장하며 그 정치적 의도가 명백해지는데...

조정은 일본 눈치보고 있는 상황에 백성들이 ​이런 집회를 여니까 어떻겠어?
"헐! 큰일 나겠다!! 야 빨리 저거 해산시켜!!!"
이에 따라 조정은 동학을 회유해서 결국 집회는 해산돼.

동학 신도들과 조선 조정 사이에 긴장이 흐르고 있을 때...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이 백성들 수탈이 심각하였고(백성들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돈을 뜯어내 등 아주 심각한 탐관오리였음), 만석보 사건(보는 저수시설을 말하는데 원래 보가 있으면 세금을 받았음. 근데 어이없이 또 보를 괜히 만들어서 세금을 더 걷음ㅡㅡ)등을 일으키며 극심한 악행을 저지르자...
드디어!! 동학 간부 전봉준은 고부에서 농민들을 규합하여 1894년에 봉기했단다.<★​★​>

● 조러비밀협약. 거문도점령(유길준의 조선중립화론). 방곡령 실패.
● 교조신원운동. 종교적 → 정치적(보은집회). 1894년 고부민란(조병갑 횡포)

II. 전개과정
1. 제 1차 전쟁(반봉건 > 반외세)
고부에서 사발통문을 발표하며 봉기를 일으켜 관아를 점령하고 아전들을 처벌했어. 그리고 새로 만든 보를 허물어버리지 ㅋㅋ
봉기가 일어나자 조정은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고부군수 조병갑을 파직한 후에 새로운 군수 박원명, 안핵사(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관리) 이용태<★​>를 내려 보내 동학군을 회유해서 진정시켰어.

어느 정도 수습되는 듯 했으나, 안핵사가 일을 그르쳐;
조정이 화난 농민들을 기껏 달래놔서 진정시켜놨는데, 안핵사가 봉기와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들여 학살하기 시작하는 거야.
전봉준은 이를 피하여 이웃 고을 무장으로 도망가고, 무장과 백산에서 다시 봉기를 일으킨단다.
여기서부터 1차 전쟁!
4대 강령을 발표하고 이젠 진짜 한번 싸워보자며 무력투쟁으로 가는 거지!

봉기한 농민들의 규모를 파악한 조정은 심각성을 느끼고, 1811년 홍경래가 일으킨 평안도 농민전쟁 이후로 80여년 만에 처음으로 중앙군을 내려 보내.
동학군은 중앙군이 내려오기 전인 4월7일에 전라감영 군대를 박살내고 중앙군을 남쪽으로 유인하여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이어서 황용촌 전투에서도 대승리를 거둬!
이 기세를 몰아 진격의 동학군은 전라도의 중심도시 전주성을 함락시키지!<★​★​>
전주성이 함락됐다는 것은 전라도 전체가 동학군에 넘어갔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의기양양한 동학군은 이제 한양으로 진격하여 민씨정권을 타도할 준비를 해.
등신 같은 민씨 정권은 당황한 나머지 역시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또! 또! 또! 또!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해ㅡ.ㅡ<★​>
아니, 농민 반란군까지 외세의 힘을 빌어야 한다니... 이건 조선의 힘이 다했다고 봐야지;

근데 문제가 생겨!!
청나라가 들어오자 일본군도 통보를 받고 들어오는 거야.
톈진조약 기억나지? 청과 일본 중에 조선에 군대 보낼거면 상대국에 통보를 한다.
이렇게 일본 군대까지 들어오니까 조정은 덜컥 겁이 난 게지.
'이거 일본한테 나라 먹히는 거 아니야? 안 되겠다 회유해야지.'

그래서 조정은 동학농민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뻗고 자신들을 더 이상 벌하지 않겠다는 것과 농민 수탈을 해결할 것을 약속해.
장기전으로 갈수록 점점 더 불리해져 가는 동학군은 이 화해를 받아들여.
이것을 전주에서 맺어진 거라 전주화약이라고 해.
이렇게 되면서 1차 전쟁은 막을 내린단다.

전주화약이 성립된 후에 동학군은 전라 감사 김학진과 협상하여 조정은 교정청을 설치하고, 동학군은 전주에 대도소를 두고 그 밑으로 마을마다 치안을 담당하고 개혁을 주도하며 관아를 감시하는 도소와 집강소<★★​>를 설치해.
그리고 난 후 폐정개혁안을 발표하지.
동학농민군이 휩쓸고 간 지역은 행정이 마비된 상태였고, 집강소가 설치되면서 사실상 치안과 행정은 관아 대신 동학군이 담당을 하게 돼.
그리고 집강소를 통해 개혁을 주도하지.
갑신정변이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면, 동학군의 개혁은 밑에서부터의 개혁이라는 점을 기억해둬!

2. 제 2차 전쟁 (반봉건 < 반외세)
조정과 동학군은 서로 화해를 했으니 청나라와 일본 군대에게 철수를 부탁해.
하지만 일본은 이를 거절하고, 이왕 조선에 온 김에 경복궁을 장악한단다.
그리고 청나라 군대를 공격해서 아주 개패듯 패버려ㅋ
이를 청일전쟁이라 하고, 승자는 일본!

지네 나라에서 싸움을 할 것이지 괜히 우리 조선에서 전쟁을 하고 그래;
얘네들이 대포 쏘고 불 지르고 해서 우리 조선 백성들이 죽어나고 황폐화가 돼.
게다가 일본 놈들은 경복궁 점령을 한 후로 조선 조정을 쥐락펴락하면서 농민들이 기대한 갑오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집강소 체제가 힘을 잃어가 그 동안의 개혁이 좌절되는 상황이 닥쳐.
또한 일본군과 관군, 그리고 민보군(폐정개혁을 하면서 농민들이 권력을 남용하며 유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항하여 맞서 탄생한 유생들의 군대)의 탄압이 심해지자, 동학농민들은 농번기가 지난 1894년 9월에 2차 전쟁을 일으켜.

1차 봉기 때는 참여하지 않았던 북접 동학 세력도 함께 남접 세력과 규합하여 그 세력이 훨씬 확대된 동학군은 일본군+관군+민보군과 전쟁을 시작!

자! 병력이 합쳐져서 대군이 모였어. 이제 한양으로 진격!
크고 작은 전투를 치루면서 북상을 시작해. 근데 한양으로 가는 길에는 우금치라는 곳이 있어.
거기서 이제 대전투가 치러지지.(우금치전투)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전투야.

동학군이 여기서 이기면 한양까지 길이 뚫리는 거고, 지면 좌절되는 거고...
숫자는 동학군이 훨씬 많았어.
하지만 일본군의 화력에는 못 당하는 겨ㅠㅠ
당시 동학농민 총은 쌉구려서 사정거리가 100보에 불과했고, 발사할 때마다 일일이 불을 붙여야 했어. 라이터로? ㅡ.ㅡ 아니; 부싯돌로;
반면 일본군의 총은 신식 모델로 사정거리가 500보에 달했고, 내부에서 자동으로 불이 붙어서 탕! 탕! 탕! 마구 쏴대는 거야.
싸움이 되겠어?;
다가가기도 전에 몰살; 동학농민군은 그냥 녹아내리는 거지 ㅠㅠ

게다가 양반들을 중심으로 뭉친 민보군까지 일본군을 도와서 동학군을 공격하니, 동학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완전히 박살나... 그리고 멸망의 길로...
1만 명 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500명 정도였으니 이건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피해;
결국 전봉준 손화중 등 지도부는 군대를 해산시키고 체포 되어서 처형을 당해.
그러나 지도층을 잃었음에도 동학군은 계속해서 무력투쟁을 했단다. 하지만 별로 성과가 없었어ㅠ
이렇게 해서 동학농민운동은 1년 만에 실패로 돌아가.

● 1차 전쟁(반봉건 > 반외세) : 안핵사의 탄압 → 4대강령 발표 → 전쟁 시작 → 황토현전투 → 황용촌전투 → 전주성 함락 → 청나라군대 들어옴 → 일본군도 들어옴 → 전주화약 → 종전
● 교정청. 도소. 집강소. 아래서부터의 개혁. 폐정개혁안.
● 2차 전쟁(반봉건 < 반외세) : 일본의 경복궁 장악 → 청일전쟁에서 일본 승리 → 개혁 좌절 → 일본군·관군·민보군의 탄압 → 전쟁시작 → 우금치전투 패배 → 종전

III. 동학농민운동의 의의
19세기 아시아 3대 농민전쟁으로 평가되는 동학농민운동은 첫째로 지배층의 수탈에 반발하고, 둘째로 외세침략에 대항한 두 가지의 성격을 갖고 있어.
동학군들은 비록 시민혁명의 수준까지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봉건제도에 치명타를 가했지.
고부민란으로부터 시작하여 1년 동안 지속된 이 엄청난 농민 봉기의 개혁 요구는 갑오개혁에 반영되었고, 비록 패배하였지만 잔여세력은 항일의병활동의 중심세력이 되었단다.

● 지배층수탈에 반발. 외세침략에 대항. 민중의 지지. 봉건제도에 치명타. 갑오개혁에 반영. 항일의병활동으로 이어짐.

- O·X 퀴즈 -

1. 프랑스는 불법적으로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O,X)
2. 조선에서 쌀이 유출되자 지방관이 방곡령을 내려 아무 탈 없이 이를 막아냈다. (O,X)
3. 보은집회에서는 정치적인 성격이 드러났다. (O,X)
4. 황토현 전투에 이어 황용촌 전투에서도 승리한 동학군은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O,X)
5. 제물포조약에 의하여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자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O,X)
6. 전주화약을 맺은 후 폐정개혁안이 발표되었다. (O,X)
7. 조정은 교정청을 설치하였다. (O,X)
8. 동학군은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O,X)
9. 1차 봉기에는 남접과 북접이 함께 연합하여 싸웠다. (O,X)
10. 동학군은 우금치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참패를 당하였다.. (O,X)

정답 : X X O O X , O O O X O


​<해설>

1. 영국임.
2. 실패하고, 결국 거액의 손해배상을 하게 됨.
5. 톈진조약에 의하여 군대를 보냄.
9. 2차 봉기 때 연합함.

​2022년 수능기출!

고부, 조병갑, 이용태, 전봉준, 전주성 등 단서들 팍팍 눈에 들어오니?

1번 : 또 삼별초야?ㅋㅋ 삼별초 매우 중요해 보이지? 이건 고려.
2번 : 정동행성은 고려.
3번 : 동학농민운동 정답!
4번 : 백두산정계비는 조선후기.
5번 : 병자호란도 조선후기.

정답 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