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조약의 체결

I. 조선의 상황
무리한 경복궁 공사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흥선대원군은 백성들에게 외면 받고, 유생들의 공격을 받아 실각해(1873).
그 후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고, 흥선대원군이 떠나간 빈자리에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여흥민씨 세력이 자리를 잡고 정권을 장악하지.
또 다른 세도정치가 시작된 거야;
민씨정권은 만동묘와 서원을 복구시키는 등 그동안 대원군이 행했던 사업들을 다 수포로 만들어.

이렇게 되니 다시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백성들 삶이 또 다시 헬....
그리고 그동안의 쇄국정책을 무너뜨리고 조금씩 청과 일본에게 유화적으로 개방정책을 실시한단다.

● 흥선대원군 실각. 고종의 친정. 여흥민씨세력 집권. 대원군의 개혁정책 모두 물거품. 조금씩 개방정책 실시

II. 청과 일본의 개항
1. 청나라의 개항
청나라는 광저우 하나만 개항하고 있다가 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한테 쳐맞고 난징조약을 체결했어.
난징조약의 내용에 따라 5개 항구를 열었지. 근데도 영국의 욕심에 차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영국은 중국한테 시비를 걸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어.

그러던 중! 애로호사건이 터져.
애로호라는 배가 있었어. 이게 뭐냐면 청나라의 소금 밀수선이야.
밀수선은 결국 청나라 조정에 걸리고, 청나라 관원들이 검문을 하던 도중 영국국기를 끌어내린단다.
청나라 배이긴 하나 선장이 영국인이었기에 영국국기가 게양되어 있었거든.

이를 빌미로 영국은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배상금을 요구해.
하지만 청나라는 이를 단호히 거절.

청나라 : 뭐 국기 하나 끌어내린 것 갖고 배상금을 요구하냐 이 코쟁이놈들아.
영국 : 뭐라 했냐? 너 뒤졌어ㅋ

이에 따라 영국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광저우를 점령하고, 북상을 해.
이를 2차 아편전쟁이라고 한단다.
북상에 성공하여 베이징 근처에서 협상을 하려는데 청나라가 자신만만하게 거절하는 거야.
바로 청나라에게는 베이징 길목을 막고 있는 '대고포대'가 있었거든.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아주 단단히 방어진을 쳐두었지.
하지만!!! 영국군한테 캐발림 ㅋㅋㅋ
그리고 영국군은 마침내 베이징 근처인 톈진까지 북상을 하니 청나라는 항복을 하며 톈진조약을 맺어.
톈진조약은 청나라가 영국에게 엄청난 배상금 요구와 차후 말도 안 되는 대접을 받는 불평등 조약이라 생각하면 돼.

근데 청나라가 톈진조약을 이행하지 않아. 그리고 무효화를 선언하지.
이에 빡친 영국은 다시 한 번 대고 포대를 짓밟고 보복의 의미로 문화재를 멸실시키며, 청나라인들을 상대로 살육·강간·약탈을 자행해.
그리고 베이징 코앞까지 진격!
결국 톈진조약보다 더 가혹한 베이징조약이 맺어지고 이로 인해 청나라는 탈탈 털리지.

2. 일본의 개항

일본은 아편전쟁을 지켜보면서 서양세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어.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던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에 접근을 해.
청나라로 가는 길목에 항구가 하나 필요했는데 그것을 일본으로 정한거지.
그래서 미국의 페리제독이 1853년 함대를 끌고 와서 일본에게 개항하라고 협박을 했어.
청나라가 개항 요구를 거절했다가 치른 결과를 알고 있던 일본은 순순히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
그리고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지.

그 후에 미국 뿐 만이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다른 서양열강들과도 잇따라 조약을 맺게 되어 일본은 서양 근대 문물을 마구마구 들여오게 된단다.
또한 메이지유신을 통해 막부체제(왕은 그저 군림하고, 장군이 통치하는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국가를 세워.
즉 일본을 아예 뜯어고쳐서 새롭게 변신을 한 거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일본이 아님...

III.조선의 개항
1.운요호사건
신식 국가로 탈바꿈한 일본은 서양열강에게 뜯긴 모든 것을 조선으로부터 보상받고, 원료공급지를 확보하고자 침탈을 계획하고 있었어.

이에 우선 조선 정부에 서계를 보내.
원래 서계는 조선 정부에서 찍어준 도장이 있는 외교문서를 말하는 것인데, 일본이 만든 듣도 보도 못한 도장이 찍혀져 있는 거야.
그리고 새로 만든 서계에 건방지게 황제가 쓰는 단어들을 쓰며 조선을 아래로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어.

조선 : 이거 뭐임? 왜 우리 서계가 아니지?
일본 : 아...그거? 갖다 버린 지 오래 ㅋ
조선 : 미쳤냐? 당장 꺼져.
일본 : 알았다 꺼질게ㅋㅋ하지만! 아 윌 비 백~ b

이렇게 조선에게 서계 수리를 거절당한 일본에서는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이 활발히 논의되었고...
그 후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자 일본은 또 다시 서계를 보내.
역시 조선은 쿨하게 일본사신을 쫓아냄.
일본은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1875년 8월에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미국이 일본에게 행했던 함포외교(무력으로 위협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외교정책)를 똑같이 따라한 거지.
신미양요 때 습득한 조선에 대한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받은 일본은 운요호라는 배를 강화도로 몰고 가서 조선의 해안을 연구하겠다고 해.
조선이 가만히 있었을까? "이 원숭이 놈들이 미쳤나? 어딜 함부로 침입을 해!"하면서 강화도 초지진에서 당연히 위협사격을 했지.
조선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운요호는 옳거니! 하면서 맞대응을 한단다.

우리 조선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운요호를 당해낼 수가 없었어 ㅠㅠ
강화도의 초지진이 아주 초전박살이 났음;
그리고 운요호는 영종도로 가서 또 대포로 포격을 한 후, 상륙을 하여 방화·살인·약탈을 자행하지.

2. 조일수호조규 체결
엄청 두들겨 맞은 조선은 일본의 압박, 청의 권고, 개화파의 주장대로...
일본 대표 구로다와 조선 대표 신헌이 일본 군사로 둘러싸인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약을 체결하고, 1876년 2월 27일에 결국 첫 개항을 해.<★​★​★​>
이로 인하여 그 유명한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지.
외국과 맺은 첫 근대적이자, 불평등한 조약이야.<★​>
강화도 조약 내용을 보자..

(1) 조선은 자주국이다
이는 조선을 수탈하는데 청나라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한 것이야.
왜냐면 조선은 뭐 할 때마다 청나라의 허락을 맡아왔는데, 청나라가 간섭하면 짜증나니 이를 사전에 차단해버리는 거지.

(2) 영사관 설치 및 치외법권 인정
그리고 개항장에 영사관을 설치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해.
치외법권이 뭐냐면 일본인이 조선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조선이 아닌 일본이 재판권을 갖는 것이야.
20여 년 전에 일어난 여중생 장갑차 사건을 떠올리면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조항인지 알 수 있겠지?ㅠㅠ

(3) 해안측량권
일본은 조선의 해안측량권을 갖는다.
이는 중요한 지리적 정보를 다 갖고 가겠다는 거지.
군사적 침략을 용이하게 하여 추후에 더 많은 항구를 개항하려고...

이와 같이 우리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 조약을 맺어.
당시 우리는 근대적 조약을 통해 개항을 해본 적이 없기에 그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부족했지.
조약 체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게 엄청나게 불합리한 조약이란 것을 깨달은 조선은 후에 조약 내용을 고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해.
하지만 조항 개정에 관한 절차 조항을 애초에 만들어 놓지 않아서 내용을 고치기가 쉽지가 않았어 ㅠ
아주 계약을 등신같이 한 거지...

참고로 일본은 강화도 조약에다가 최혜국 대우 조항을 넣어달라고 했단다.
최혜국 대우가 뭐냐면 말 그대로 최고의 혜택을 받는 나라로 해달라는 거지.
예를 들어 일본이 최혜국이 된다면, 훗날 청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때 일본과의 조약보다 더 좋은 내용이 있을시 그걸 일본에 자동으로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거야.
다행히 조선은 이를 거절했다는 것을 알아두렴.

강화도 조약체결 시 부산만을 개항했는데, 해안측량권으로 정보를 끌어 모은 일본은 조선에게 80년에는 원산, 83년에는 인천을 열게 해.
처음에 경제적인 이유로 부산을...
조선 위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즉 군사적인 이유로 원산을...
마지막으로 한양에 가까운 인천은 정치적인 이유로 개항했단다.

조선은 후에 일본과 강화도조약의 부속조약인 조일무역규칙(제1차 조일통상장정), 조일수호조규부록을 더 체결하면서 아주 탈탈탈 털려.
조일무역규칙 때는 무관세·무항세·무제한곡물유출이 대표적인 내용이었고, 조일수호조규부록은 조선에서 일본화폐이용가능·간행이정(개항장 방파제로부터 동서남북 10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설정 등...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게.

●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1876). 첫 근대적 조약. 불평등 조약.
● 강화도 조약 내용 : 조선은 자주국-청나라 차단 목적. 영사관 설치 및 치외법권. 해안측량권.
● 일본의 최혜국대우 조항 삽입 요구는 조선이 거절함.
● 부산개항(76) → 원산개항(80) → 인천개항(83)

- O·X 퀴즈 -

1. 여흥민씨 세력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이어나갔다. (O,X)
2. 일본은 운요호사건을 일으킨 후에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 (O,X)
3. 강화도 조약에는 치외법권 조항이 들어있다. (O,X)
4.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부산이 개항되었고, 그에 이어 원산, 인천이 차례로 개항하였다. (O,X)​
5. 강화도 조약에는 최혜국 대우 조항이 들어있다. (O,X)

정답 : X O O O X


​<해설>

1. 여흥민씨 세력은 외국에 조금씩 개방해 나갔음.
5. 최혜국대우 조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