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정치

I. 사림의 분열
'사림의 대두와 사화' 편에서 설명했듯이
사림세력이 훈구파와 4번의 사화를 거치며 마지막의 승자가 됐지?
사림이 훈구파를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물량.
서원에서 엄청난 물량이 계속해서 뽑아져 나왔기 때문에 사화에서 그렇게 피해를 당하고도 결국 승리함.

이리하여 훈구파는 몰락하고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상황에서....
사림은 여전히 서원에서 계속 물량이 뽑아져 나와.
어떻게 되겠어?
벼슬 하고 싶은 사람의 수는 많은데 관직의 수는 정해져있으니 서로 경쟁이 붙겠지?

그래서 이제는 사림끼리 편을 갈라서 싸우는 거야.
이 편을 바로 붕당이라고 해.
뭐를 놓고 싸우느냐? 특히 관직 중에서 전랑 같은 요직을 두고 싸우지!

II. 붕당정치의 시작
선조 때 의정부사인이라는 관직을 갖고 있는 심의겸이라는 사람이 영의정 집에 방문을 해.
근데 그가 거기서 김효원을 본거야. 김효원은 당시 벼슬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글솜씨로 사림들로부터 칭송받고 있던 선비였어.
심의겸은 문장으로 유명한 선비가 세도가인 영의정 집에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보고 그를 청렴치 못한 선비라며 속으로 멸시하게 됐지.

후에 김효원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때마침 이조전랑(조선의 인사권에 관하여 쥐락펴락할 수 있는 실세 관직) 오건이 사직을 하면서 후임자로 김효원을 추천했어.
근데 당시 의정부사인에서 이조참의(현재의 차관보 급. 이조전랑의 상관격)가 된 심의겸이 이를 반대한 거야.
"이 놈은 벼슬을 하기 전부터 영의정집에 드나들며 아첨이나 일삼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인사권에 접근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난 이 승진 반댈세..."
그래서 김효원은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고 말아.

하지만 김효원은 뛰어난 능력치를 가진 사기 캐릭터라서 결국 3년 후에 이조전랑이 되지.

그리고 그는 많은 공적을 쌓은 후 또 승진을 하게 되어 이조전랑직의 후임을 정해야 하는데(자대권), 심충겸이 거론되는 거야.
심충겸은 심의겸의 동생이거든.
김효원이 어떻게 했겠어ㅋㅋ
"심충겸은 절대 안 돼!!! 꺼져!!!!"
김효원이 극구 반대를 하여 심충겸은 결국 탈락.

심의겸은 김효원이 자신과의 사적인 감정으로 동생에게 보복했다고 주장하며 분노게이지가 만땅으로 차.
그래서 둘은 앙숙지간이 됐단다.
김효원 집은 동쪽에 있고, 심의겸 집은 서쪽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동인 서인이라고 했어.
이들 무리의 싸움이 붕당정치의 시작이야.
그리고 그 후 권력을 잡고, 놓치고 하면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갈리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는 등 아주 복잡하게 패를 나누어 치고 박고 싸운단다.


III. 붕당정치의 변질
1. 예송논쟁
이제 17세기를 보자.
현종 때 남인과 서인이 조정에서 동거를 하다가 한판 붙어!
그게 바로 예송논쟁<★★>이야.
예송논쟁이 뭐냐면 그때 당시에는 아들이 죽으면 어머니가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그 기간에 대해 다툼이 있었어.

원칙대로라면 장남이 죽으면 3년, 나머지 아들이 죽으면 1년이야.
현종의 아버지인 효종은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가 죽고 나자 원칙대로 차남의 대우를 할 것인지, 왕이니까 특별히 장남처럼 대우할 것인지 다투게 돼.
전자를 주장한 사람이 서인이고, 후자는 남인이야.

예송논쟁은 1차와 2차가 있었는데, 1차는 서인이 이기고 2차는 남인이 이겨.
그래도 이때까지는 붕당은 서로 비판을 하며 싸우기는 했지만, 때로는 협력해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정치적 동지였어.
매우 건강한 붕당정치였지.

2. 환국
하지만 2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서인들의 씨를 말리고 싶어하는 거야.
지들끼리만 국정을 운영하려고!
서인도 마찬가지로 남인을 조정에서 몰아낼 생각을 해.
이때부터 비정상적인 붕당정치가 시작;

그래서 나온 게 환국<★>이야.
환국이 뭐냐면 정권을 잡은 세력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리는 사건이라 생각하면 쉬워.
마침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위해 한 붕당이 힘이 세지면 다른 붕당에 힘을 실어줘서 갑자기 뒤엎어버리는 일을 선호했어. 물갈이를 하는 거지.
이렇게 해서 정파대립이 심해진 거야.


환국은 총 3개.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정권이 뒤바뀌는 거야.
그것도 갑자기!!
오늘 왕이랑 웃고 떠들며 화기애애하게 국정을 돌보다가, 갑자기 다음 날 아침에 귀양 ㅋㅋ
이게 환국이야.

남인과 서인(노론)이 서로 업치락 뒤치락 하면서 정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다가 결국에는 노론이 승리를 해.
남인은 조정에서 완전히 까임.
광해군 때 함께 몰락한 북인처럼 아예 내쳐져서 다시는 전성기를 누리지 못해 ㅠ
이렇게 되어 노론은 권력을 확실히 잡았고 세도정치까지 쭈~욱 권력을 유지하지.

● 예송논쟁. 환국.

IV. 영조와 정조
시험에서 영조의 업적과 정조의 업적을 보기에 섞어 놓고, 각 왕의 업적을 골라내는 문제가 출제 돼.
누구의 업적인지 잘 기억해야 해.
표랑 함께 보자.

1. 영조
노론의 지지를 얻어 천한 무수리(궁중에서 허드렛일 하는 여인)의 아들인 서자 영조가 즉위를 해.
엄밀히 따지면 정상적인 왕이 아닌 게야.
적자가 아닌 것도 크게 문제가 되는데, 무수리의 아들을 왕으로 삼다니...
명나라의 승인을 얻기도 참 민망했고 조선의 가치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지만 환국에서 승리한 노론의 파워가 막강했기에 밀어붙일 수 있었단다.
영조는 왕이 되는데 노론의 힘을 많이 빌렸지만, 일부의 소론과 남인을 등용하며 탕평책을 펼쳐.

탕평책이란 숙종 처럼 환국을 일으키며 한 붕당을 밀어주는 게 아니라, 여러 붕당을 고루 등용하여 정치세력의 균형을 맞추는 거야.
영조는 강하게 나갔어.
성균관에 탕평비<★★>까지 세우며 붕당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거든.

또한 붕당의 물량을 뽑아내는 서원을 대폭 정리하고, 붕당싸움의 원인이 된 전랑직의 권한도 많이 축소해.
이렇게 하여 신하들의 세력 균형을 꾀했단다.

2. 정조
정조도 역시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아 시행을 해.
왕 재임기간 내내 노론 견제하려고 힘을 썼단다.

정조는 영조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야.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인데, 노론의 모함을 받아서 영조의 손에 죽었어.
노론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죽인 자의 아들이 왕이 되면 X되는 거잖아;
그래서 정조가 왕이 되지 못하도록 엄청난 정치적 공격을 했지.
하지만 이런 공격을 다 선방하고 정조를 왕에 앉힌 인물이 바로 홍국영이야.

홍국영은 정조가 왕이 되자 왕권을 강화시키려고 머리를 짜내.
그래서 탄생한 게 장용영!<★★>
최정예 막강 울트라 파워 국왕의 호위군대야.
왕에게 군사력이 생기니 노론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파워가 생기겠지?
신하가 좀 거슬린다 싶으면 장용영을 시켜 끌고 와서 조져버리니;
장용영 덕에 생긴 파워가 뒷받침이 되어 정조는 규장각을 세운단다.

규장각은 도서관이자 학문을 연구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개혁정책이 주도되어 핵심 정치기관이 되지.
특이한 점은 서얼들을 많이 등용했다는 점이야.
이렇게 서얼들이 힘이 강해지니 양반의 실세인 노론이 큰 타격을 받았지.
뿐만 아니라 정조는 신진 인물이나 중 하급관리 중 규장각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도를 실시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켰단다.

게다가 노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시전상인들에게 치명타를 먹여.
원래 도성 내의 시장에서는 잡상인의 장사를 금지하는 법이 있었어.
장사할 수 있는 면허증을 부여 받은 시전상인들에게 독점권을 쥐어준거지.
이게 바로 금난전권<★★★>이야.
기가 막힌 것은 잡상인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면 시전상인 스스로 그걸 단속할 수 있었지.
만약 시전상인 구역에서 허가도 받지 않은 사람이 장사를 하잖아?
그럼 물건 다 때려 부수고, 압수하는 동시에 진짜 겁나 두들겨 패ㅋㅋ
조선상인들 나오는 드라마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이들은 물품 판매를 독점하면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끌어 모았단다.
근데 정경유착되어서 시전상인 돈이 뇌물로 노론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정조가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들의 이 독점권을 폐지해버렸단다.<★★★>
정조 겁나 쎄지?
이를 신해년에 시행했다고 해서 신해통공<★★>이라고 해.

마지막으로 정조는 수원 화성을 건축<★★★★>했다는 것을 기억!
새로운 정치 중심지, 군사적 기반, 경제 활성화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성의 건축은 권위의 상징이 돼.
도성 너머로 웅장한 규모로 성을 지으면서 왕실의 위엄을 높였지.
특히 수원 화성은 혁신적인 기술과 방법을 도입하여 건축했는데, 여기서 정조의 개혁 의지와 통치 철학을 볼 수 있어.

● 영조 : 탕평책, 탕평비, 서원정리
● 정조 : 탕평책, 장용영, 규장각, 서얼 등용, 초계문신제, 금난전권 폐지, 수원화성


V. 세도정치
정조가 죽고 나자 어린 순조가 즉위해.
탕평책이 중단되어 반대파도 죄다 제거가 됐겠다, 왕도 어리겠다, 이러다보니 노론 신하들의 파워가 하늘을 찔렀겠지?
노론이 다른 붕당은 조정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배제한 후에 정권을 확!!! 휘어잡으면서 비로소 붕당정치가 끝이 나고 세도정치가 시작돼.
노론 내부에서도 또 분란이 일어나 밥그릇 싸움이 전개 된 거야.
노론 중에서 안동김씨와 풍양조씨가 싸움에 승리하면서 비변사와 5군영을 장악, 즉 행정권과 군권을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지.

세도정치로 인하여 왕권이 땅바닥에 철퍼덕 내팽겨 쳐지던 시대야.
나라꼴이 정상이 아니겠지?
그러니 엄청난 부정부패가 이루어져.
관직을 실력이 아닌 돈으로 사는 꼬라지가 펼쳐진 거야.
특히 수령직의 매관매직이 매우 성행했어.

예를 들어 너 국무총리한테 30억 갖다 바치면 평생 인천시 시장 시켜준대. 이게 정상이야?
만약에 너가 30억 내고 인천 시장이 됐어. 그냥 시장이 아니라 너한테 사법·입법·행정 군권까지 있는 풀파워 시장이야.
어떻게 하겠어? 다시 본전이라도 찾을 마음이 생기겠지.
백성들 수탈;
이리하여 수령들과 향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해.
붕당정치가 끝이 나자 조선에 더욱 암울한 시대가 찾아온 거란다.

하지만! 이 세도정치를 끝내고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흥선대원군!
이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해 줄게~
ㅂ2ㅂ2

● 순조 즉위 후 노론이 정권을 독점 → 세도정치 시작. 매관매직 등 극에 달한 부정부패. 심각한 수탈로 백성들 삶 피폐.


2023 기출문제야.

사건의 순서를 묻는 문제야.
각 사건의 연도까지 외울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흐름은 순서대로 기억하고 있어야지.
(가)는 선조 때 동인, 서인으로 나눠지는 시기고,
(나)는 영조 때 탕평비를 세우는 시기야.

1번 : 환국이 일어났다 정답!
2번 : 무신 정권은 고려.
3번 : 위화도 회군도 고려.
4번 : 성왕 사비 천도는 삼국시대.
5번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먼 훗날 고종 때.

정답 1번.

진짜 쉽게 나온다ㅋㅋ
그냥 아예 다른 시대 사건들을 경쟁자로 주니깐 이건 뭐ㅋㅋ
보기에 규장각만 넣었어도 오답률 확 올라갈걸?
암튼 우리 한국사 절반 정도 왔으니 힘내고 끝까지 완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