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의 대두와 사화

I. 개요
조선의 건국 시간에 잠깐 훈구파와 사림파에 대해 설명했지?
조선 초기에는 훈구파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다가 사화(선비(사림)들이 입은 화)를 거치면서 사림파가 결국 훈구파를 몰아내고 역사의 주도세력이 됐잖아.
오늘은 그 훈구파와 사림파의 성격, 그리고 사화에 대해 설명을 할 거야.

그림에 나온 것처럼 훈구파는 가면 갈수록 세력이 하락해. 그리고 나락으로....
사림은 연산군 때 2번, 중종 때 1번, 명종 때 1번, 이렇게 총 4번의 사화<★>를 거치며 굴곡을 형성하다가 선조 때 빡!!!! 훈구파를 몰아내고 집권!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훈구파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어.
점점 치고 올라오는 사림에게 위협을 느낀 훈구세력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거든.


●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4번의 사화가 발생함.

II. 사화의 배경 사림은 고려의 신진사대부 중 온건파의 후손들이야.
고려 말에 온건파가 혁명파한테 뚜드러 맞고 지방으로 다 도망갔잖아.
그리고 거기서 "난 고려의 신하요. 절대 저 역적 이성계에게 충성하지 않을 테다." 이러면서 걍 서원 짓고 공부나 하고 살았지.
이렇게 중앙에는 진출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온건파의 후예들은 시간이 흘러 태조도 죽고, 태종도 죽고, 세종도 죽고.... 조선을 미워하는 마음이 사그라진 거야.
그래서 이들도 조정에 진출을 하기 시작해.

특히 삼사에 들어가서 훈구를 까댔단다.
성종은 훈구세력을 견제하려고 김종직을 중심으로 사림을 적극 등용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중종은 현량과(천거제도)를 실시하여 사림을 조정에 끌어오는 등 그들은 삼사에 들어가서 훈구세력을 마구 비판을 하게 되지.
그러다보니까 훈구파가 위협을 느끼는 거야.


사림 : 전하. 훈구놈들이 대농장을 소유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사옵니다. 다 몰수하셔서 백성들을 구제해주십시오.
왕 : 진짜냐?
훈구 : 아... 아닙니다. 제가 재테크를 잘하여 대농장을 소유하긴 했으나 백성을 괴롭힌 적은 없사옵니다. 모함이옵니다! (이 놈들 봐라? 안되겠네...)

그래서 훈구파가 사림파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해. 사화가 시작된 거지!

III. 사화
1. 무오사화
무오사화는 연산군과 삼사의 갈등에 그 시초가 있어.
삼사가 맨날 연산군에게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하니까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태였거든.
훈구들이 맨날 사림들한테 공격을 받다가 어느 날 춘추관에서 역사서를 쓰는 김일손(사림)이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인용한다는 사실이 훈구파 귀에 들어갔어.
조의제문이 뭐냐면 초한지에 나오는 초나라 의제가 항우에게 살해당한 것을 비유하여 세조가 단종을 폐하는 등의 일을 은근히 비판하는 글이거든.
그래서 훈구파는 이를 기회로 삼아 사림에게 역공격을 펼쳐.


훈구 : 전하. 이것 좀 보십시오. 김일손 이놈이 지 스승의 조의제문을 역사서에 인용했나이다.
연산군 : 이거 내 증조할아버지 세조대왕 욕하는 거 아냐?!
훈구 : 맞사옵니다~ 역심을 품은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 따위의 글을 역사서에 집어넣을 수 있겠사옵니까?!
연산군 : 야 김일손 이새끼 의금부로 끌고 와! 당장!!! 내 직접 심문하여 주리를 틀리라!!!!

그래서 연산군이 김일손을 조지던 중.... 삼사가 또 나서서 연산군을 쪼아대는 거야.
안그래도 삼사 꼴베기 싫었는데, 지 조상 욕들어 먹어 빡친 연산군이 드디어 눈 돌아갔지.

연산군 : 이제 보니까 이놈들이 짐과 대신들을 떼거지로 비방하는구나. 야.... 다 역적이니 잡아 들여서 때려 패버려라.
훈구 : 알겠사옵니다~~~ ^_^

이래서 김일손과 그와 연루된 삼사의 사림들이 싹다 사형을 당하고 유배를 갔으며 파면 당했어.
또한 조의제문 쓴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지.
이게 첫 번째 사화인 무오사화야.

2. 갑자사화
갑자사화는 '훈구파 VS 사림파' 대결구도가 아니라 사실 '연산군 VS 신하' 구도야.
무오사화를 거치면서 삼사는 수그러들어.
더 이상 연산군과 대신들에게 심하게 딴지 거는 자들이 없어진 거야.
이렇게 견제세력이 없어지면 원래 자신이 구상했던 것을 아주 추진력 넘치게 팍!팍!팍! 실행할 수 있거든.
근데 안타깝게도 연산군은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버린 거야.

맨날 다수의 기생들을 궁궐로 불러서 술 마시고, 음란한 짓을 자행해;
왕이라는 자가 비싼 술과 고기를 먹고 쳐놀기만 하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그러니까 국고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해.
이에 참지 못한 대신들과 삼사들이 한 목소리로 왕에게 충언을 한단다.
근데 연산군은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고 탄압을 하지.

이런 상황에 플러스로!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연산군이 어릴 때 죽은 폐비 윤씨에 대해서는 궁궐에서 신하들끼리 절대 비밀로 하고 있었거든.
근데 그걸 연산군의 외할머니가 고해 바쳐.
이때 연산군 또 폭발 ㅋㅋㅋㅋ

" 우리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된 놈들...............다 잡아 들여라!!!!!!!!!!!!!!!!!!!!!!!!!!!!!!!!!!"

이렇게 해서 훈구파 사림파 할 것 없이 싹 다.... 연산군이 잔인하게 처벌해.
죽은 자(부관참시 포함)만 해도 100명이 넘었어. 무오사화는 6명인데 비해 엄청난 숫자지;
연산군이 일으킨 이 폭력적인 처벌이 갑자사화야.
피의 복수로 많은 신하들을 죽여 팬 연산군은 더욱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다가.... 2년 반 뒤에 중종반정으로 인해 폐위되지.

3. 기묘사화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은 그동안 연산군이 국고를 탕진하면서 엉망으로 만든 이 나라를 정상으로 복귀시키고, 발전시키고자 했어.
혼자? 당연히 아니지.... 신하들과 함께!
개혁을 이루는데 신하들 중심에는 조광조<★★>라는 인물이 있었어.
조광조는 사림들을 규합해서 막강한 추진력을 행사하던 사람이었거든.

현량과 실시, 향약 보급 등 훈구파에게 불리한, 그리고 사림파에게 유리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하지만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
조광조가 훈구파를 너무 심하게 까대니까 훈구파의 반격에 숙청당한 사건이 기묘사화야.
중종은 처음에는 조광조를 디게 좋아했는데, 이 똑똑한 인간이 점점 갈수록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니 싫어진 거지.
그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자, 중종 자신도 위협을 느끼게 돼.

그래서 훈구세력들을 은밀하게 불러서 조광조를 비롯한 맨날 자신을 까대던 삼사의 사림세력들을 어떻게 견제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궁궐의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走肖爲王(주초위왕) 모양으로 갉아 먹는 사건이 생겨.
이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한 글귀거든.
(사실 훈구파가 나뭇잎에 주초위왕 모양으로 꿀을 바름. 그래서 애벌레들이 꿀을 따라서 파먹은 거임.)
이걸 계기로 중종은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와 사림들을 싹~ 청소해버렸단다.

4.을사사화
을사사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보복정치!
중종의 첫째아들이 인종인데, 인종 어머니인 장경왕후(둘째부인)가 인종을 낳자마자 6일 만에 죽어.
그래서 중종은 후에 셋째부인인 문정왕후를 들이고, 훗날 명종을 낳지.
문정왕후 입장에서는 어떻겠어? 자기 자식이 왕이 되기를 바라겠지?
이에 따라 문정왕후 세력은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해.

하지만 인종은 죽은 장경왕후 추종세력과 힘을 합쳐 모든 공격을 다 선방하고 결국 왕이 돼.
한마디로 '인종의 외갓집(대윤) VS 명종의 외갓집(소윤)' 싸움이었고, 인종의 외갓집이 승리한 게지.
근데 인종은 왕이 되자마자 1년도 안되어 건강상의 문제로 병 걸려 죽어버린 거야 ㅠ 그래서 이제 명종이 왕이 됐단다.
어떻게 되겠어? 인종의 외갓집은 X된거지. ㅋㅋ

게다가 명종은 당시 너무 어려서 모든 정사는 문정왕후가 주도했는데...
문정왕후가 명종을 왕위에 올리는데 반대하고 인종의 편을 들었던 인종의 외척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해.
인종 외척세력이 명종을 폐위시키고 다른 왕족(계림군)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파들을 아주 몰살시킨 거야.
이 과정에서 사림들이 엄청 죽어나갔단다.
이게 바로 을사사화!

을사사화는 대윤과 소윤이 자신들이 바라는 왕을 세우려고 한 싸움이야.
왕은 그저 끌려 다니는 거지...
명종 때는 이와 같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외척들의 힘이 너무나 강해져서 결국에는 왕권 약화를 초래했단다.
이렇게 사화를 거치면서 사림들이 엄청나게 희생됐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훈구파를 몰락시키고 사림이 조정을 장악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바로 유닛 생산력의 차이 때문이야.
훈구파는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반면에 사림은 지방의 서원에서 엄청난 물량이 뽑아져 나오니 죽이고 죽여도 끝이 없는 게지.
이런 사림은 물량을 앞세워 훈구파를 다 쫓아내고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후에 또 다시 사림 내에서 세력이 나뉘어져 싸우게 돼.
이를 붕당정치라 하는데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줄게.


● 무오사화 : 연산군. 김일손의 조의제문 인용
● 갑자사화 : 연산군의 폭정
● 기묘사화 : 조광조. 너무 강하게 추진하다가 결국 사림들이 숙청 당함.
● 을사사화 : 대윤 VS 소윤. 문정왕후의 보복정치
● 4번이나 훈구파에게 까였는데도 유닛생산력의 차이 때문에 결국 훈구파는 몰락하고 사림파가 집권.

2019년 기출문제!

중종반정 이후 진출한 정치인이 향약 보급, 현량과 실시를 건의했대.
조광조네.

정답 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