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화

I. 교육
1. 개항기
우리 한반도 역사상 교육정책이 가장 크게 달라지는 시점이 1895년 교육입국조서야.
2차 갑오개혁때 시행된거지.
지금 초중고대학교 이런 교육과정이 이 시점을 기준으로 시작돼.

교육입국조서가 시작되기 전에는 원산학사(원산), 배재학당(서울), 이화학당(서울), 육영공원(서울)이 있었어.
유교적 구습에 찌든 조선인들에게 신식교육을 보급하여 정신부터 개화한다는 것이 목표였단다.
교육입국조서가 시작된 후에는 근대적 교육제도에 따라 사립학교에는 국내에 대성학교(평양), 오산학교(정주).... 국외에는 서전서숙, 명동학교가 설치됐고, 국립학교에는 소학교, 한성사범학교, 외국어학교, 한성중학교가 있지.

조선인들이 똑똑해지면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골치아프겠지?
멍청해야 더 다스리기 쉽잖아...
그래서 일본은 사립학교들이 세워져서 민족운동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립학교령(학교를 세우려면 일본 허락을 맡아야 하는 등의 내용)을 제정한단다

2. 1910년대
조선이 일본에게 넘어간 1910년대는 1차조선교육령이 발표돼.
주요내용은 보통학교수업연한이야. 일본놈은 6년, 조선인은 4년.... 차별적인 교육이지.
조선인은 저급한 실업교육만을 받게하여 일본인이 착취할 수 있는 충성적인 노동자를 양성하는게 목표였단다.
그리고 이놈들이 조선어교육을 축소해.

3. 1920년대
3·1운동 후 문화통치시기!
저번에 언급한 조선교육회의 노력으로 2차조선교육령이 나와.
일본학제랑 조선학제가 같아져.
즉, 보통학교 수업연한이 조선인도 6년!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겨.

조선인도 대학교를 갈 수 있다는 얘기야.
그래서 민립대학을 설립하려고 했지만 경성제국대학이 생기면서 실패했다고 했지?
문화통치시기의 교육은 일본인과의 차별을 없애서 조선인에게 좋은 정책을 펼쳤다고 오해하면 안돼.
사실은 교육제도와 기간을 확충하면서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였어.
약았지;
이때는 조선어 과목이 필수로 됐다는 것을 기억!

4. 1930년대
전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와.
일본은 이를 해결하고자 전쟁을 택하지.
이에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게 돼.
조선인의 머리 속에서 조선이라는 것을 지워버리겠다는거야.
무리수;;

1938년에는 3차 조선교육령이 나오는데....
보통학교를 심상소학교로 이름을 바꾸면서 일본학교와 동일하게 개칭해.
근데 여기에 교장이나 교무주임에 일본인을 앉히면서 일본 교육을 더욱 강화한단다.
조선어는 이때부터 수의(선택)과목이 돼. 말이 선택과목이지 실질적으로 금지나 다름 없어.

5. 1940년대
일본이 아주 막 나가는 시기;
1941년에 국민학교령이 제정돼.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라는 초등교육정책이야.
이어서 4차조선교육령이 발표되어서 수업연한이 단축됐고, 전시동원체제교육이 주를 이룬단다.
이게 뭐냐면 학교 가서 창 칼 총질을 배우는거야 ㅡ.ㅡ
아주 우리 조선어린이들을 일본의 총알 받이로 양성하겠다는거지;
그리고 이때 조선어교육이 아예 금지가 돼ㅠ

● 1910년대 : 1차 조선교육령. 차별교육(조선인4년·일본인6년). 조선어교육축소
● 1920년대 : 2차 조선교육령. 평등교육(조선인·일본인 모두 6년). 고등교육가능. 조선어과목필수.
● 1930년대 : 3차 조선교육령. 심상소학교. 교장·교무주임에 일본인. 조선어과목은 수의(선택)과목으로.
● 1940년대 : 4차 조선교육령. 전시동원교육체제. 조선어교육금지.

II. 국어(연구)
국어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해.
언어와 생활양식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국어를 잃어버리면 나라의 정신까지도 사라지는거나 마찬가지야...
인도영화보면 영어 쓰지?
홍콩도 영어 쓰잖아.
영국식민지의 영향이야.
하지만 우리는!!! 일본놈들이 일본어 교육을 강화하고 조선어를 금지하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언어를 지켜내신 분들이 계셔.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한번 보자.

1. 개항기
국문연구소 : 훈민정음 만들때 청음청이 설치된 것을 제외하고 최초의 국어연구 국가기관이야. 19세기 말엽부터 문자 문제가 제기되자 통일된 문자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국어문법과 음운 등을 연구했지.

조선광문회 : 일제가 조선의 서적과 문화재를 털어가자 박은식, 최남선 등이 이를 지키고자 조선광문회를 만들어 고전을 정리 및 간행하고 보급하였어.

국어연구학회 : 주시경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해 조직한 학회야.

2. 1910년대
이때는 일제의 탄압이 심하여 연구가 불가능 했단다.

3. 1920년대
조선어연구회 : 국어를 연구하고 보급할 목적으로 결성된 최초의 민간학술단체야.
주요활동을 보면 가갸날을 정했어.이게 뭐냐면 지금의 한글날이야. 그리고 잡지 '한글'을 발간하여 한글 보급에 힘썼단다.

4. 1930년대
조선어연구회가 이름을 바꿔서 조선어학회가 출범해.
일본 이런 미친놈들이 연구를 방해하려고 이름이 똑같은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어ㅡ.ㅡ
그래서 조선어학회는 오리지날 조선어연구회가 이름만 바뀐거야ㅋ
잡지 한글은 계속 간행했고, 표준어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했단다.<​★​★>
또한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시도해. but.... 실패ㅠ

5. 1940년대
사전편찬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42년 조선어학회사건때문이야.
어처구니 없이 치안유지법이 적용되어 회원들이 검거되면서 조선어학회가 해체돼;
광복 이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고쳐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단다.

● 개항기 : 국문연구소. 조선광문회
● 1910년대 : 無
● 1920년대 : 조선어연구회(가갸날. 잡지'한글')
● 1930년대 : 조선어학회(표준어와 맞춤법통일안 제정. 우리말큰사전편찬시도(실패).)
● 1940년대 : 조선어학회사건(1942)-치안유지법으로 해체.

III. 문학
1.개항기
신체시 : 원래 존재했던 창가에는 글자 수가 엄격하게 지켜져야 했어. 하지만 이런 법칙을 무시해 버리는 시가 나타난거야.
바로 신체시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잡지에 실리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서태지가 랩을 한 수준의 충격을 주었지.

신소설 : 1900년을 전후하여 장면묘사, 풍속의 개량 등 내용과 형식이 고전소설과는 현저하게 다른 소설이 탄생하는데 이를 신소설이라 해.
대표작으로는 혈의누, 은세계, 자유종, 금수회의록이 있지.

2. 1910년대
신소설이 발전하여 사실주의 바탕으로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다룬 근대소설이 등장해.
대표작은 이광수의 '무정'이야.

3.1920년대
20년대 작품들은 성격이 초반과 중반이후로 나뉘는데...
초반에는 31운동 실패로 인한 암울한 정서를 표현한 낭만주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해. 동인지(뜻이 같은 글쓴이들이 모여서 편집 발행하는 잡지)에 소개가 되었어.
'창조', '폐허', '백조', 그리고 그 유명한 이상화의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대표작!
중후반에는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KAPF문학(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이 있음), 즉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작품들이 주를 이뤄.
그리고 신경향파 문학이 유행하게 돼.​
게다가 수능 언어영역의 단골손님인 진달래꽃, 님의침묵이 ​이 당시의 작품이지.

4. 1930 · 40년대
이때는 일제가 문화통치를 접고, 조선인들을 핍박할 때야.
이러한 현실을 등지는 순수문학, 일본인들 찬양하는 친일문학(서정주, 노천명), 일제에 맞서는 저항문학(이육사, 윤동주)이 있었단다.

IV.잡지
1. 개항기
소년

2. 1920년대
천도교에서 발행한 어린이, 개벽!
조선어 연구회의 잡지 한글도 기억!

3. 1930년대
진단학회가 발행한 진단학보

● 개항기 : 소년
● 1920년대 : 어린이. 한글
● 1930년대 : 진단학보

V. 연극 영화
1. 개항기
원각사(1908) : 은세계, 치악산이 공연됨.

2. 1910년대
신파극이 유행 : 1910년대 중반부터 주류가 된 연극으로 눈물·콧물짜는 슬픈 것을 주제로 함.

3. 1920년대
전통연극이 유행해.
토월회 : 도쿄 유학생들이 조직한 극단이야. 1회 공연에서는 실패했지만, 2회 공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큰 인기를 누렸지. 주로 남녀평등 주장, 유교 사상 비판, 일제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활동했어.
1926년 춘사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상영.

4.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토월회 이름이 바뀐것) : 유치진의 '토막'.

VI. 역사
1. 개항기
(1) 계몽사학(계몽이 목적이기에 객관성이 좀 떨어짐)이 유행을 해. 위인전(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등)이나 다른 나라의 흥망사(베트남흥망사 등)가 많이 읽혔어.

(2) 신채호의 '독사신론' : 잡지 '소년'에 연재된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야. 또한 대한매일신보에도 연재가 됐지. 민족주의 사학의 방향을 제시했단다.

2. 1910년대
​무단통치로 역사 연구가 심하게 탄압을 받는 시기야. 이때는 조선사편수회(조선사편찬위원회가 변한 단체)가 왜곡된 역사서 편찬으로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을 만들어내. 타율성론(조선은 자립적인 역사가 아닌 중국과 일본의 도움만 받아온 민족, 임나일본부를 보면 알 수 있다), 당파성론(조선은 맨날 붕당으로 싸우기만 한 민족), 정체성론(조선 역사는 정체되어 있다. 일본의 고대사 수준임. 따라서 일본을 따라와야 한다.)​을 주장했지;

3. 1920년대
식민사관에 맞서 역사 연구가 활발해져.
(1) 민족주의사학
1) 신채호 - ​책 2권이 유명한데, 조선사연구초(낭가(화랑도)를 강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해), 조선상고사(고대사 중심, 역사는 아와 비아와의 투쟁)​가 있어.
2) 박은식 - 한국통사(한국의 아픈역사, 개항기를 다루고 있음,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정신, 그리고 국혼을 강조, 나라는 형·역사는 신)<★​>,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음)​ 책이 있어.
​또한 식민사관의 타율성을 비판​했단다.

4. 1930년대
(1)'민족주의사학'이 30년대에 들어서도 계승됐단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얼을 강조한 정인보​와 안재홍​이 있지.

(2) 이병도, 손진태가 진단학회를 만들어서 실증주의 사학을 주장해.실증주의사학이 뭐냐면 역사를 있는 그대로! fact만을 보여주자는 것이야.

(3) ​1930년대에는 사회경제사학이 등장해. 백남운(조선사회경제사)<★​>이 대표인물! 사회경제사학은 유물사관(철저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들의 키워드는 발전(역사는 발전한다), 법칙(그 발전에는 법칙이 있다), 보편(그 법칙은 보편적인 것이다)이야.

이에 따르면 사회에는 발전순서가 있는데...
원시공산제 → 고대노예제 → 중세봉건제 → 근대자본주의 → 사회주의(공산주의).
전세계는 결국 사회주의로 바뀔것이라 주장했음을 기억해.
또한 이들은 식민사관의 정체성을 비판해(아니다.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사학도 비판하지.(우리는 과학적인 논리인 반면, 너네는 왠 정신을 따지냐?)

(4) 1930년대 식민사관​은 청구학회​와 조선사편수회가 주도했어. 이들은 경성제국대학 등과 관계를 맺으며 일본의 조선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했지;

● 1920년대 : 민족주의사학(정신강조). 신채호-조선사연구초(낭가,서경천도운동),조선상고사(아와 비아와의 투쟁,고대사중심). 박은식-한국통사(개항기중심,국혼강조),한국독립지혈사(일제강점기중심),혼을 강조,식민사관의 타율성 비판,우리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정신 강조.
● 1930년대 : 조선학연구(민족주의사학을 계승)-정인보(얼 강조),안재홍. 실증주의사학-Fact중시,이병도·손진태의 진단학회,진단학보. 사회경제사학-백남운(조선사회경제사),유물사관(사회주의),발전·법칙·보편,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 O·X 퀴즈 -

1. 1차 조선교육령은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에 대하여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O,X)
2. 3차 조선교육령 부터 조선인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O,X)
3. 4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조선어 교육이 금지되었다. (O,X)
4. 국문연구소는 국어문법과 음운 등을 연구하였다. (O,X)
5. 1910년대에는 신경향파문학이 유행하였다. (O,X)
6. 1930년대 잡지로는 천도교에서 발행한 어린이가 있다. (O,X)
7. 1920년대에 영화 아리랑이 개봉되었다. (O,X)
8. 박은식은 혼을 강조하였다. (O,X)
9. 사회경제사학은 유물사관의 성격을 갖고있다. (O,X)
10. 진단학회는 실증주의사학을 주장했다. (O,X)

정답 : O X O O X , X O O O O

​<해설>
2. 2차 조선교육령임.
5. 1920년대임.
6. 1920년대임.